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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철수 십자성 비밀 작전(2006년 비밀해제)한국 근현대 역사/한반도 전쟁사 2023. 6. 15. 12:58
월남(남베트남) VS 월맹(북베트남)이 맞붙은
베트남 내전은
1955년부터 시작되어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맺기까지
13년동안 지속되었다.
오랜 내전으로 지쳤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종전과 평화를 갈망했다.
더 이상 외국 군대는 필요 없으니 미군과 한국군은 다 나가~
이제 우리 베트남 민족끼리 평화롭게 살아갈꺼야~
그러나 영원히 지켜질것으로 믿었던
종전 선언과 평화 협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종전선언, 평화협정을 뒤집고 베트남 내전이 재개되었다.
1973년 3월, 미군과 한국군은 남베트남에서 전면적으로 철수했다.
1975년 1월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의 2/3를 점령했다.
1975년 4월 북베트남의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1975. 4.30일 오전 10시 남베트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게 항복을 선언한다.
자유 월남은 패망했다.
자유 대한민국도 월남처럼 패망할 수 있다.
먼저 휴전상태를 종전선언으로 바꾸고 평화협정을 맺고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과 중국의 공산군이 남한을 침략할 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 수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패망'이다.
북한 간첩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일 정도로 '패망 직전'의 월남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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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내부에서 기생하고 있는 종북 좌파 언론은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 패망을 앞당길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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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베트남 전쟁의 역사로 돌아가보자.
1973년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한 이후 베트남 내전은 재개되었고
1975년 1월 남베트남의 2/3이 북베트남의 손에 들어갔다.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 정부는 남베트남에 남아있는 자국민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한국 정부도 주월한국대사관에 교민 철수 지시를 내렸다.
당시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현재 호치민)에는 교민 수백명이 남아있었는데 1975년 3월까지 절반이 항공편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의 교민은 항공편 단절로 인해 안전한 귀국이 불투명해졌다.
1975년 4월 북베트남의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결국 1975년 4.30일 오전 10시 남베트남 대통령은 북베트남에게 항복한다.
월남이 월맹 공산군에게 패망한 것이다.
이 기간중 교민 철수를 위한 십자성 작전이 비밀리에 수행되었다.
단 한명의 희생자 없이 교민 354명을 포함한 1902명을 안전하게 탈출시킨 성공적인 작전이었지만
군사기밀로 지정되어 2006년이 되어서야 알려졌다.
비밀로 덮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작전이 공산 월맹에 알려지면 미처 탈출시키지 못한 이대용 주월공사, 공관원 3명, 다수의 교민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기때문이다. (다행히 1980~1981년 석방)
십자성 작전 참여 장병들은 참전용사법상 1973년 3월 26일(공식 철수일) 이후의 작전이라 국가 유공자 인정도 받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에 '월남 패망에 희열을 느꼈다.'는 부분이 정말로 있을까?
문맥상 리영희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에 희열을 느꼈다는것은 확실해 보인다.
[팩트체크]문재인 대통령, 월남 패망하는 모습 보고 희열 느꼈다? - 머니투데이 (mt.co.kr)위 기사에 대한 비공감은 무려 61%나 되고 공감은 39%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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